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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위를 걷을 수 있는 곳, 성동구


‘성동’(城東)은 말 그대로 도성에서 동쪽방면, 즉 한양 도성의 동쪽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 위치를 정확히 짚어보면 흥인지문(興仁之門)에서 동쪽이 아닌 광희문에서 향하는 동쪽에 자리해 있다. 광희문을 통해 도성을 빠져나오면 동녘으로 전개되는 들녘이 있었는데 이 들녘을 흔히 동교 또는 전교라 불렀다.

                    
                

성동구가 걸어온 길

동교라 불리우는 들녘이 끝나는 곳에 한강이 있으며, 한강변에는 뚝섬, 두뭇개 등의 나루가 있어 강원도에서는 목재와 땔감이, 충청·경상도에서는 식량과 잡화가 몰려드는 등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관문 역할을 했다. 특히 두뭇개 뒷산 저자도와 압구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독서당이 세워져 조선왕조를 지탱한 많은 수재가 학문수학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농촌 마을이 산재해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등 조선 시대까지 동교는 한없이 평화로운 고장이었다.

철기 문화가 발달하면서 한강유역은 비옥한 토지로 농경 생활의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졌고, 이 지역을 먼저 점령하기 위해 한강을 중심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서로 각축을 벌였다. 신라가 점령하게 되자 성동구를 포함한 서울지역, 양주군, 고양군 일대가 한양군에 속했고, 서울지역의 별칭인 한양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성동구는 정종 때까지는 양주로, 문종 이후 충렬왕까지는 남경으로, 충선왕 이후 고려 말까지는 한양부로 불렸다.

과거 성동의 위치는 지금과 달랐다. 정확히 말해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소위 ‘강남 3구’라 불리는 서초, 강남, 송파까지 아우르던 거대한 행정구역이었다. 당시 인구도 78만 명으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그 후 시행된 행정구역 개편으로 5개 구로 분리되면서 서울 전체 면적의 2.8퍼센트(16.84㎢) 크기로 아담한 자치구가 됐지만, 성동구는 좌절하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그날부터 줄기차게 변화를 거듭해오며 지금도 변신과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있다. 오늘 필자는 그들 중 하나를 만나보려 한다. 행인들을 위해 선뜻 제 몸을 내어주는 가슴 벅찬 보물, 성동구의 행당동에 위치한 살곶이다리다. 

 
  • 살곶이다리에는 태조 이성계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살곶이다리, 그 이야기를 찾아서

살곶이다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새 도읍을 정하기 위해 무학대사와 함께 한양 땅을 돌아다니던 때, 마침내 왕십리 인근을 도읍으로 결정하고 도성을 건설하게 되었으나 이성계는 무료할 수밖에 없었다. 태생이 무관이었던 명장 이성계. 활을 쏘고 싶어 온 몸이 근질거렸으니, 꿩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찾아 사냥을 즐겼다. 

그곳이 바로 살곶이다리의 근교에 있는 응봉이었다. 이성계는 날아오르는 꿩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고, 화살은 정확히 꿩의 몸을 꿰뚫고 개천 건너편으로 떨어진다. 이 귀신같은 솜씨를 본 사람들은 꿩이 떨어진 곳을 살곶이 벌이라 불렀다. 훗날 세종 대에 이르러 세종이 상왕 태종의 나들이를 위해 이곳에 다리를 건설하였으니, 후에 성종이 이 다리를 보고 제반교라 명하였다.

 
  • 살곶이다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성동구의 보물, 살곶이다리

살곶이다리는 ‘제반(濟盤)’이라는 옛 이름처럼, 그야말로 우직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센 물살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강직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으니 절로 무너질 일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이 태조 이성계를 기억하며 살곶이 벌로 이어지는 이 다리를 살곶이다리라 불렀으니 이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이 다리의 일부를 사용하였고, 시간이 지나며 하천의 폭 또한 옛날보다 더 넓어졌다. 그래서 지금의 살곶이다리는 옛 모습이 절반, 현대식으로 재건된 다리가 절반인 재미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슬프게 보일 수도 있는 모양새이나, 막상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두 개의 모습이 공존하는 이 모습이 바로 살곶이다리의 매력이라 말한다. 살곶이다리는 보물 제 178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성동구 사람들이 이곳을 보물이라 부르는 것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아름다운 모습이 쉬이 볼 수 없는 명물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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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성계가 이야기가 펼쳐져 있는 곳!
성동구의 보물, 살곶이다리가 궁금하다면 성동구 행당동으로 떠나보세요~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4년 11월 09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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